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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ritics

시간의 ‘틈새’

하나의 면에서 출발하여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나기까지 약 5분 남짓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. 사실 전시장에서 그것도 선 채로 5분 동안 영상을 느린 변화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지루하다. 넓은 종이를 잇대 만든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이 점차 형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지 비로소 그것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무임을 알 수 있다. 바람에 서로 부딪치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없었더라면 미련없이 그 장소를 떠날 수 있을 정도의 느림, 그 느림은 대상의 변화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사람들의 조급함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.

그러나 마침내 숲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이 나타나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가 서서히 부각된다. 바로 속도에 대한 반역이다. 현재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것이 빛의 속도라고 한다면 하원의 가역적 작업은 단지 그 속도를 느리게 진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빛을 분절시켜 재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.

속도는 현대의 상징이자 표상이며 현대적 삶의 준거로 작용하고 있다. 그런 점에서 시간을 축약시키는 영상이야말로 속도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. 하원의 작업은 질주․추월․가속력이 윤리처럼 되어버린 이 시대에 ‘느림’의 방법을 통해 이의를 제기한다. 그의 느림보 영상은 마치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저편에 서서 그 흐름을 관조하듯 시간의 단위들을 토막냄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. 보치오니에게는 카페에서의 소란스러움조차 현대성의 표상이었겠지만 하원에게는 속도가 더 이상 현대를 대표하지 않는다.

우리의 조급한 기대를 저버리고 영상을 느리게 보여주는 것은 시간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라, 그 틈바구니 속에 있기 때문에 지각하지 못하는 미세한 운동을 극대화시키는 장치이자 방법이다. 그런 점에서 느린 영상은 단지 시간을 길게 틀어놓은 것이 아니라 각 시간의 최소 단위마다 끊임없이 방점을 찍어 넣음으로써 관성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 퉁겨나가기만 하는 우리의 감각이 사물과 세계를 보다 예민하게 지각하도록 유도하는 하나의 틈새라고 할 수 있다.

최태만, 서울산업대 교수
<월간 art 2002년 9월호>